<고양이가 있는 풍경>

선배 나는 말이죠 어른이 되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어요. 그런 말로 시작하는 키세의 이야기는 소박했다. 시골이라도 좋으니까 빛이 잘 드는 방에 커튼을 치고 살고 싶었다고. 

"지금은 거실에 빛이 잘 들어서 좋아요". 

또 침대를 두고도 부엌을 넓게 쓸 수 있는 집이면 좋겠다고. 선배와 같이 그렇게 살고 싶다고. 키세에게 무릎 베개를 해주는 카사마츠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세는 그런 카사마츠를 보고 조금 웃다가 다시 나른한 표정으로 하나 하나 천천히 얘기했다. 나중에는 빛이 잘 드는 방에 캣그라스를 키우고 장식장을 마련해서 받은 상들을 진열해 놓고 싶다고. 그런 집에서 고양이 밥을 주고 고양이 털을 빗어주고 싶다고. 

"도쿄에서는 그런 집 비싸겠지?"

키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카사마츠가 던진 말은 제법 묵직한 현실감을 주었다. 키세는 김이 좀 샜다는 표정으로 여기보단 비싸겠죠, 라고 대꾸했다. 카사마츠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잘 안 되는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키세가 손을 뻗어 미간을 펴 주었다.

"안 그래도 험한 인상 더 험해짐다~"

짐짓 농담을 던져도 카사마츠의 심각함이 풀리지 않자 키세는 옆에 일어나 앉아 자기를 똑바로 보게 했다. 선배, 나를 봐요. 그제야 카사마츠가 똑바로 키세를 바라보았다.

"선배 지금 '그거' 생각하고 있죠?"

카사마츠는 잠깐 눈을 피했다가 다시 키세에게 눈을 돌렸다. 키세도 나른한 표정은 치우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맞아."

키세도 곰곰히 생각하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카사마츠에게 지금 현실 말고 꿈 같은 얘기를 해보자고 했다.

"지금은 돈을 모으는 단계니까 현실은 너무 생각하지 말자구요. 벌써 그러면 지치니까. 안 그래도 우리 밤낮으로 일하느라 지치는 일 많잖아요?"

카사마츠는 피식 웃으며 키세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그리곤 그게 그렇게 가볍지가 않다니까, 라고 대꾸하면서도 천장을 올려다보며 꿈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네에 농구 코트가 있는 데가 좋겠어. 길에 있는 것 말고 체육관에. 고기를 구워 먹어도 되는 집이면 좋겠어. 칫솔걸이를 두어도 공간이 모자라지 않는 욕실이면 좋겠고. 욕조가 큰 게 있으면 좋겠다. 너랑 욕조에서 놀게. 카사마츠는 키세에게 짓궂게 웃어보이고는 말을 또 이었다. 지하철 역이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키세, 지하철 역이 가까우면 시끄럽겠지?"
"도쿄면 어디든 시끄럽겠죠."

고양이는 소음에 약하다던데, 그렇게 말하며 카사마츠는 키세의 귀를 쓸었다. 키세는 간지럽다며 킥킥 웃었다.

"우리 집에 고양이는 한 마리면 되겠다."

카사마츠는 키세의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꽉 안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에, 저는 두 마리 정도는 키우고 싶은 걸요? 제가 다 돌볼게요오."

키세는 카사마츠를 마주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고양이가 오면 정말 잘 돌보겠다고 애교를 부렸다.

"한 마리는 내가 벌써 돌보고 있는걸?"

그 말에 키세가 안고 있던 것을 풀고 살짝 떨어져서 자신을 보자 카사마츠는 키세의 코를 콕콕 찔렀다.

"너 말이야 너."

키세는 어깨를 으쓱 하며 잘 모르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저는 고양이보단 개같다고 그러던데요?"

카사마츠는 더 말해주지 않고 그저 키세를 다시 끌어당겨 꽉 안았다.

"사람들은 너를 잘 모르는 거야."

자기가 키세를 제일 잘 안다는 듯한 어딘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키세는 한껏 웃으며 카사마츠의 정수리에 뽀뽀 했다.

"아직 정식 결혼도 안 했는데 이렇게 잘 알면 결혼하고 나면 저 잡혀 살겠는데요?"

키세의 너스레에 카사마츠는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키세가 종종 아빠 웃음같다고 놀리는 웃음이라 잘 짓지 않았지만 지금은 키세가 볼 수 없는 자세라서 마음껏 그렇게 웃었다.

"뭐, 침대에서 만큼은 네가 날 잡고 사니까 괜찮잖아?"
"에엑 선배 변태. 아까도 욕조 얘기 하고. 꺄아~"
"잡아먹을테다~"

키세는 짐짓 몸을 물리며 두 손으로 제 몸을 가리는 포즈를 취했다. 카사마츠는 그걸 덮치는 시늉을 하며 키세의 볼에 뽀뽀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사랑받는 것을 아는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의 곁에 있었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기에는 너무 먼 사이였다.

우리는 도쿄로 갈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함께 있을거니까. 결혼 얘기를 꺼내자 낯을 흐리던 카사마츠에게 키세의 그 한마디는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있기 위한 증거로서의 결혼. 그것 때문에 조금 힘들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어요. 키세의 말은 카사마츠 때문에 꺼낸 것이었다. 카사마츠가 결혼이라는 말에 낯을 흐린 것이 키세 때문이었던 것처럼.

너는 고양이같아. 카사마츠는 그날 밤 또 한 번 그 말을 했다. 선배는 개에요. 키세는 그렇게 받아쳤다. 그리고 덧붙였다. 개와 고양이는 앙숙이라던데요. 카사마츠가 태클을 걸었다. 걔네는 말이 안 통해서 그렇잖아. 키세는 몸을 붙여오는 카사마츠에게 마주 붙으며 그 말에 긍정했다.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이잖아요. 그 말에 카사마츠가 작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그러니까 도쿄 갈 때까지 내 말 잘 들어야해."
"체에, 선배도 제 말 잘 들어야 함다."
"알았어, 알았어."

도란도란 작은 대화가 오가는 속에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둔 반지가 희미하게 빛났다. 뭉툭하고 디자인도 없는 반지지만 단단해 보였다. 시부야 구에서 결혼 확인서를 받기 전까지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줄 만큼 튼튼해 보였다. 

-끝-

황립데이 넘겼지만, 황립데이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도쿄 시부야 구에서만 결혼 확인증을 발급하고 있다고 해서 떠올린 이야기 입니다. 카이조는 카나가와 현에 있으니 이사를 가야 하더라구요. 둘은 졸업해서 동거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결혼식을 쓸까 했는데 왠지 그런 것보다 둘의 생각을 묶어주고 싶었어요. 음 카사마츠는 규칙 같은 것에 좀 더 매이고 키세는 현실로 보이는 것에 매인다는 그런 느낌으로 썼는데 카사마츠가 키세를 보내려 하고 키세가 결혼으로 매이는 걸 싫어한다고 보일까봐 걱정이네요. 그저 키세는 같이 있는 현재가 중요한 거고 카사마츠는 법적인 보호로 묶이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겁니다. 서로를 아는 만큼 조금 이기적으로 서로를 위하려는 그런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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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잇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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