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잘 다녀와 (行ってらっしゃい)
카사마츠는 잠에서 깼다. 살짝 떠진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성가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러는 동안 뭘 건드렸는지 귓가에서 멀찍이 들리던 알람소리가 확 가까이 들리면서 카사마츠의 남은 졸음을 날렸다. 이불 위를 더듬어 바쁘게 울리는 알람을 해제했다. 다시 조용해졌고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도 익숙해졌겠다, 잠시 온몸에 힘을 빼고 이불 위에 늘어졌다. 아주 잠시 그렇게 있다가 온 몸을 쭉 펴서 기지개를 켰다. 일어나기 위한 준비동작이었다. 카사마츠는 제자리에서 팔을 위로 들어 기지개를 편 다음, 옆을 흘긋 보고 팔을 옆으로 힘차게 내렸다.
"으헉!"
철썩 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키세가 숨을 단말마처럼 내뱉는 소리가 났다. 몸을 꿈틀거리는 걸 보니 아직 살아있는 것이 확실했다. 꼭 숨이 막혀 죽은 것처럼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었지만 말이다. 카사마츠는 몸을 일으켜 앉아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시 이십일분. 키세가 일어날 시간이었다. 카사마츠가 먼저 빠르게 씻고 키세가 씻으면 적당할 것이었다.
"일어나. 아침이야. 출근해야지."
"으아아... 일어났어요 선배... 아프다구요... 등에 자국 남았어요?"
키세는 엎드린 채로 고개만 살짝 들어 자신의 등짝을 내려친 사람에게 제 등을 봐달라고 했다. 카사마츠는 빨간 기운이 사라지고 있는 등을 가만히 바라보며 오늘 촬영분이 수영장에서 멋지게 다이빙하는 씬이라고 했던 걸 기억해냈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원래 피부로 돌아오겠지만 혹시 몰랐다. 일어나기 싫은지 꿈틀대는 키세를 놔두고 이불 발치에 놓인 냉장고를 열어 아이스팩을 하나 꺼냈다. 적당히 시원한 것을 확인하고 이불 옆에 굴러다니던 누군가의 티셔츠를 주워 키세 등에 던지고 아이스팩을 그 위에 얹었다. 키세는 조금 움찔거리더니 시원하다며 또 얼굴만 들고 인사했다. 카사마츠는 그 꼴을 보고 혀를 쯧쯧 찼다. 명색이 모델에 단역이긴 하지만 드라마 출연도 하는 녀석이 머리는 부스스해서 얼굴도 말이 아닌 채로 일어나는 꼴이라니. 게다가 등에는 어제 자다가 덥다며 벗어던진 티셔츠만 얹고 알궁둥이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자신 외에는 볼 일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누가 볼까 겁나는 광경이기도 했다. 카사마츠는 훤히 드러난 엉덩이를 찰싹 소리 나게 한 대 때려주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알몸인 건 카사마츠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어나서 빠르게 욕실로 들어가니까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에 샴푸를 칠하면서 조금 상냥하게 깨워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 생각은 머리를 헹구면서 물과 함께 씻겨내려갔다.
키세는 카사마츠가 올려주고 간 아이스팩의 찬 기운이 가시는 동안 좀 더 자려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욕실의 물소리가 잠깐 끊겼을 때 겨우 정신을 차렸다. 카사마츠가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을 차례일 것이었다. 키세는 몸을 굴려 간신히 일어났다. 아이스팩과 구겨진 티가 이불 위에 떨어졌다. 어제는 확실히 무리한 모양이었다. 카사마츠가 오늘은 그만 하고 자자는 말을 했을 때 들을 걸 그랬다고 때늦은 후회를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간단하게 기지개를 켜고 아이스팩을 냉장고에 넣었다. 졸음이 덜 가셔서 티도 같이 냉장고에 넣었다가 정신차리고 다시 빨래통에 던져넣었다. 늘 펴두는 상 위를 행주로 한 번 닦고 반찬을 꺼내두니 타이밍 좋게 다 씻은 카사마츠가 나왔다. 훈훈한 김이 나는 카사마츠라니 확 안아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손만 닿아도 안 씻은게 무슨 짓이냐며 손발이 날아올 것이 뻔해서 얌전히 욕실로 들어갔다.
키세는 씻는 것이 오래 걸렸다. 사실 씻는 것보다 그 후에 바르는 것과 머리 말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키세가 씻는 동안 카사마츠는 트렁크 팬티 한 장을 걸친 채로 키세의 짐을 쌌다. 옷은 구김이 없는 셔츠와 바지 몇 개를 옷장 한 쪽으로 빼뒀으니 거기서 골라입을 것이었다. 가방을 열어 빈 캔이나 쓰레기를 비우고 핸드폰 배터리를 전날 충전해 둔 것으로 바꾸면서 손수건도 교체했다. 그리고 상비약이 떨어졌길래 조금 채워넣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기 옷을 찾아입었다. 가방은 전날 키세가 들어오기 전에 미리 다 싸뒀으니 그대로 들고가기만 하면 된다. 카사마츠가 밥을 푸는 동안 드라이어 소리가 멎고 키세가 정돈된 모습으로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환한 미소로 좋은 아침, 하고 인사하는데 역시나 몸은 알몸이었다.
"선배 좋은 아침임다!"
"그래 좋은 아침. 넌 다 좋은데 그러고 있으면 거기에 이거 그대로 던지고 싶거든? 빨리 입어라."
"넵."
옷도 다 입고 아침식사도 끝내고 나니 일곱시 사십오분. 키세가 조금 서둘러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구두를 신는 키세를 도와주며 카사마츠는 혀를 찼다.
"너 눈 밑이 좀 어둡다. 어제 그러게 일찍 자자니까. 모델이 이게 뭐야."
"에이, 괜찮슴다. 가서 조금만 커버해달라고 하면 될 정돈데요 뭘."
키세는 가방을 받아들며 거울을 살짝 봤다. 키세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고 카사마츠는 잊은 거 없는지 하나하나 키세와 말로 확인을 했다. 카사마츠가 하나씩 말 할 때마다 키세는 손으로 더듬어 물건을 확인했다.
"...랑 핸드폰, 지갑, 가방은 내가 챙겨놨고."
"넵! 그럼 다 챙겼슴다!"
"잠깐, 이거."
자신있게 외치고 돌아서려는 키세를 카사마츠가 잡아세웠다. 앗, 하고 살짝 벌려진 입에 카사마츠가 짧게 키스했다. 그리곤 어느새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 된 키세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현관문까지 친절하게 열어주었다. 문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키세의 머리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느때처럼, 카사마츠는 웃는 얼굴로 키세를 배웅했다.
"그럼, 잘 다녀와."
"네! 다녀오겠습니다!"
키세는 등 뒤로 닫히는 문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 저녁에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또 저 문 뒤에서 카사마츠가 어서오라고 맞아줄 것이었다. 그런 아침으로 오늘도 키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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