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세는 핸드폰 너머의 상대가 바로 앞에 있는 양 얼굴을 구기며 화를 냈다. 바로 옆에 있는 카사마츠는 그런 키세를 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호텔방이니 방음은 잘 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카사마츠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화내는 건지 아니까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인상만 구길 뿐이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카사마츠도 기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벼르고 벼른 1박2일 데이트 아닌가. 키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 크리스마스에도 계획했었지만 이제 막 패션계에서 뜨는 신인이 쉴 수 있을리 만무했기에 무산되었다. 이어지는 신년까지도 스케줄이 가득잡혔고 카사마츠도 대학의 일로 바빴으므로 결국 다음 크리스마스를 약속했다. 그 다음이 바로 다음해가 아니라 올해, 그러니까 키세가 스물 두 살 생일을 지낸 해의 크리스마스가 도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 때문에 키세가 몇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전날과 당일은 절대로 어떤 스케줄도 가지 않을 거라고 매니저에게 못을 박았다. 그러나 매니저는 그렇다고 좋은 기회도 안 간다는 말은 아니라고 알아들었는지 유명 잡지의 섭외를 바로 수락해버렸다고.
"그야 여자애들이 싫은 건 아니지만,"
키세는 그렇게 말하며 카사마츠에게 한 손으로 비는 시늉을 했다. 카사마츠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나한테도 사생활이 있다구요. 오늘내일은 진짜 정말 절대로 안 할겁니다. -그러니까 이미 유명해진 건 둘째치고 더 유명해지는 건 안 좋다니까요?"
상대가 뭐라고 키세를 구슬리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게 키세를 화나게 한 건 분명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뭐라뭐라 소리치던 키세는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끊습니다' 딱 한 마디를 하고 통화를 끊어버렸다. 평소라면 예의없게 무슨 짓이냐며 키세를 때렸을 카사마츠가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잘했어."
그리고 손을 뻗어 키세에게서 폰을 받아갔다. 키세는 카사마츠가 자기 핸드폰을 무음모드로 돌려놓고 충전기에 연결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표정도 말하고 싶은 걸 참는 표정이 아니라 지쳐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카사마츠가 그런 키세를 끌어당겨 등을 감싸안자 그제야 겨우 "미안해요 선배..."라고 중얼거렸다. 카사마츠는 괜찮다는 말 대신 등을 토닥여주었다.
카사마츠는 멍하니 있는 키세를 이끌어 침대 끄트머리에 앉히고 그 앞에 서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카메라도 팬도 상대팀 농구선수도 심지어 자신도 아닌 허공을 멍하니 보는 키세는 꽤 청순하다고, 절대 입밖에 내지 않을 생각을 카사마츠는 마음껏 하고 있었다. 그러다 키세가 슬쩍 고개를 들어올리자 밑에서 보는 시선이 아주... 그 시선을 마주하자 발끝이 저려오는 것 같았다. 카사마츠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키세는 반사적으로 눈을 반쯤 감았다. 보통때라면 키세가 마주 키스해와서 카사마츠는 이 타이밍에 눈을 가만히 감으면 되었는데 이번에는 카사마츠가 키세의 턱을 잡아 좀 더 끌어당기고 자신이 고개를 살짝 비틀어 살짝 벌이진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지만 카사마츠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살짝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 평소라면 떨어지는 걸 금세 따라붙어 진하게 이어졌을테지만 지금은 지치고 생각없는 키세니까. 카사마츠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 쪽에서 키세의 입안으로 침략해 들어갔다.
가볍게 하는 키스라면 키세에게 많이 해줬지만 더 진한 키스는 키세쪽에서 먼저 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키세는 여간해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카사마츠도 그 마음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다보이는 얼굴이란 매우 도발적인 것이었다. '청순하다고 생각한 얼굴로 도발적인 것이 어떻게 가능하지?' 카사마츠는 곧 키세라서, 잘생긴 키세라서 그렇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심장을 지나 뱃속에서부터 뜨겁고 또 간질간질하게 차오르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어서 키세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그리고 키세를 밀어붙이듯 키스하다가 결국 침대로 키세를 넘어뜨려 입술이 떨어진 사이에,
"-선배,"
선배, 하고 키세가 정신이 든 건지 당황한 건지 떨리는 목소리로 카사마츠를 불렀다. 다시 키세의 입술을 찾아들던 카사마츠가 드디어 멈췄다. "응, 키세." 부끄러움이 몰려들었는지 열기를 참는 건지 한 박자 대답이 늦게 나왔다. 차마 키세와 눈을 못 맞추고 있는데 그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유킷치, 밖에 눈옴다."
그 말에 카사마츠가 고개를 돌려 전면베란다를 보자 어느새 정말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키세를 두고 몸을 일으켜 전면 베란다로 다가갔다. 끝없이 내리는 것이 하늘에서 잘 내리지 않는 눈을 억지로 눈을 쏟아내리는 듯한 풍경이었다. 왠지 유리가 사라진 듯 눈이 선명해져서 베란다 창에 손을 대려는데 뒤에서 언제 옷을 벗었는지 상의탈의한 키세가 카사마츠의 뒤에서 그를 안아왔다. 놀라서 고개만 돌려 올려다보니 눈이 잘 보이던 이유가 있었다. 키세가 어느새 불을 끄고 온 것이었다.
"유킷치, 메리 크리스마스.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꽤나 대담해서 좋네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키세는 벌써 카사마츠의 상의 안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카사마츠는 한숨을 내쉬려다가 대신 장난스레 웃으며 다른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