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은 눈물맛>
전력주제하고 조금 멀어진 글입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첫 키스를 하면 귀에서 종 소리가 들린대. 정말이야? 너어무 황홀해서 발 뒤꿈치도 바짝 들린다더라. 까르르 웃으며 높은 톤으로 속삭이는 목소리는 지나갈 때스치지 않도록 떨어져 있어도 귀에 박히듯이 들려왔다. 자기들 딴에는 저희끼리 말한다고 조용하고 가는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았지만 그런 소리가 더 귀에 잘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복도로 나가려다 여학생이 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문턱에서 멈춰버린 남학생은 의도치 않게 여학생들의 얘기를 엿듣고 말았다.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섰지만 귀까지 막아두지는 않아 오히려 책을 타고 울려 들어온 것이다. 복도로 나온 카사마츠의 얼굴은 책을 내리고 나자 온통 새빨개져 있었다.
'첫사랑과 첫키스에... 황홀하니 어쩌니... 여자애들이 그런 소리를 복도에서 해도 되는거야?'
물론 저희끼리 소근대는 소리였던 것도 알지만 여자에게 면역이 없는 카사마츠의 머릿속은 당황으로 얼룩덜룩해져서 아무 생각이나 해대는 중이었다.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으로 홧홧해진 얼굴을 겨우 식히며 이동하는데 복도 저편에서 '카사마츠 선배!'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키세였다. 나쁜 생각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닌데 화들짝 놀라 '윽?'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선배 제가 그렇게 싫습니까? 윽, 이라니요 너무함다 정말... 아아아 잘못했슴다 선배 귀는 제발 놔주세요!"
"시끄러워. 네놈이 여기는 웬 일이야?"
카사마츠는 한마디로 일축하며 마주치자마자 울상을 하고 질질 짜는 농구부의 에이스를, 혹은 그 에이스의 귀를 끌어내려 기를 팍 죽여놓았다. 키세는 끌어내려질 때 아팠는지 귀를 잡은 채로 이번에는 싱글싱글 웃었다. 정말 잘생겼다. 농구부 에이스에 모델이라니. 키세의 환한 표정에 식어가던 얼굴이 다시 홧홧해지는 것 같았다.
"선배 졸업식 발렌타인데이아닙니까? 선물로 초콜렛 드리려고 하는데 뭘 좋아하시나 해서 말임다."
"아앙?"
"어, 초콜렛 싫어하심까? 아, 초콜렛 종류를 모르시는구나 으악!"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이렇게 바보같은 소리를 한다. 마저 더 바보같은 소리를 하기 전에 책을 말아서 옆구리를 때려주었다.
"바보냐? 우리 졸업식은 3월이라고."
"어라?... 3월이 발렌타인데이라고 생각해버렸지 뭠까. 하하"
"한 달이나 착각하면 어쩌자는 거냐? 네놈은 폭력을 휘두르는 선배는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주었으면 하고 있는 거지? 발렌타인데이라니, 화이트데이라면 모를까. 너는..."
거기까지 말을 하던 카사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바보같은 말을 한 것에 비해 심한 말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키세의 얼굴이 조금 굳어지는 걸 못 알아챘다면 더 심한 말을 해버렸겠지. 카사마츠가 입을 다물자 키세가 오히려 당황한 얼굴이 되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미안하다."
카사마츠는 짧게 사과했다. 그리곤 키세가 잡을 새도 없이 뒤돌아 가버렸다. 키세가 뒤에서 '화장실은 그쪽이 아니지 않슴까...'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무시하기 어려웠지만 애써 무시해주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책은 대출 연장 신청을 하려는 책이었다.
이제는 관련 없어진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키세는 계속해서 좋아하는 초콜렛이 뭐냐며 카사마츠를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트뤼플이니 봉봉이니 하는 초콜렛 종류를 사진과 함께 계속 들이대질 않나 생판 처음 들어보는 초콜렛 브랜드의 이름을 줄줄 외며 하나 골라 보라고 하는 등 무척 본격적이고 집요한 질문이었다. 그것도 자기보다 큰 녀석이 입시 준비로 정신 없는 와중에 마주치기만 하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퍼붓는 질문이라 위압감까지 들었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지 모르지만 한 숨 돌릴 겸 농구부에 가보면 다른 후배 녀석들까지도 슬금슬금 카사마츠의 초콜렛 취향을 묻고 있었다.
"초콜렛 취향이 그렇게 궁금하면 종류별로 대령해서 하나씩 줘보던가!"
드디어 1월 초 어느날, 폭발한 카사마츠가 머리를 쉴 겸 방문한 농구부 락커룸에서 그렇게 소리쳤다. 농구부의 락커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침이었다. 조용해진 주변에 비해 그날도 열심히 카사마츠를 추궁하던 키세는 깨달았다는 얼굴로 '알았음다!'하고 외쳤다. 옷을 갈아입던 다른 너셕들은 카사마츠를 보고 다시 키세를 보다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것 같은 카사마츠의 얼굴을 보고 부리나케 얼굴을 돌려 자기들 할 일에 매진했다. 카사마츠는 한 숨을 쉬고 락커룸을 도로 나섰다.
그 후로는 거짓말같이 카사마츠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았다. 입시도 끝났는데 정작 발렌타인데이 때는 아무 소란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카사마츠는 녀석이 법석을 떨어서 그렇다며 내심 기대한 자신을 억눌렀다. 하지만 기대가 다 억눌러지지는 않았는지 키세가 찾아오지도 않는 것이 조금 서운했다. 대입 원서를 넣고 알아보고 하며 정신없는 2월을 보내고 3월이 왔는데도 키세는 초콜렛은 커녕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졸업식 당일, 키세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다줬다. 오전 촬영이 있다며 본인이 직접 드리진 못해도 꼭 받아달라고, 전화와 함께 제 매니저를 보낸 것이었다. 반 친구들과도 사진을 찍고 정신없는 와중에 온 선물이라 전화도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다. 본인이 오지 못해 아쉬워하는 키세만큼 카사마츠도 아끼는 에이스가 와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같이 사진 찍어야 할 사람들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해서 제대로 인사도 해주지 못하고 끊어버렸다. 농구부 녀석들도 많이 찾아와서 하루 종일 사진만 찍다 끝난 기분이었다.
카사마츠는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그리고 의자에 잠깐 올려놓고 잊어버렸던 키세의 꽃다발을 찾으러 다시 학교로 향했다. 아직 봄이 아닌지 벌써 어둑해진 교정에서 그 꽃다발을 들고 키세 본인이 서 있었다. 촬영에서 짐이 많았는지 다른 손에도 종이가방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이거 찾으러 왔어요? 저, 조금 울 뻔 했슴다. 버려진 줄 알고..."
"어, 아냐 정신없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 선배 만나서 다행입니다. 못 보는 줄 알았어요."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겨우, 카사마츠가 우리 사진 찍을까? 하고 말을 꺼냈다. 그 말에 키세가 활짝 웃으며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해는 지고 있었는데도 주변이 밝게 느껴졌다. 그런 키세와 바싹 붙어서 키세의 핸드폰으로 어색하게 사진을 두어 장 찍었다.
"그, 이거 선배 드리는 선물입니다. 발렌타인데이는 아니지만... 졸업 축하드립니다. 카사마츠 선배."
"그래 고맙다...어? 어... 이걸 다?"
"저, 선배 정말 좋아함다. 제 마음입니다. 받아주세요."
"어? 왜 울려고 하냐 사내자식이."
카사마츠는 키세가 제 앞에 종이 가방을 몽땅 내려놓자 당황했다. 얼굴을 들어 키세를 보자 그렇게 밝았던 얼굴이 굳어서는 울상이 되어있었다. 카사마츠는 종이 가방을 피해 곧 울 것 같은 키세의 어깨를 토닥여 주려고 다가갔다가 확 끌려갔다. 카사마츠가 어? 하는 사이에 키세가 얼굴을 내려 입을 맞춰왔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첫 키스를 하면 머리 속에 종이 울린다.
잠깐, 이라고 말하며 떨어지려던 카사마츠는 그대로 멈춰서 다시 키세의 입술을 받았다. 그 때 그 여학생들이 지나면서 하던 말이 정말이었다. 머리 속에 종이 울렸다. 커다랗게 딱 한 번. 이게 황홀한 느낌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발 뒤꿈치가...
"야, 키세! 이건 내려놓고!"
카사마츠는 키세가 저를 번쩍 안아올리며 키스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공중에서 발버둥 쳤다.
'황립전력 60분' 카테고리의 다른 글
[AU](미완) 키세, 하늘치에 타라 (현대+피를마시는새 세계관) (0) | 2015.01.11 |
---|---|
[기다려줄래(요)?]강아지 키세를 주운 카사마츠(수인요소)(설정날조) (0) | 2015.01.04 |
[메리크리스마스]키세료, 메리 크리스마스 (0) | 2014.12.27 |
[나이]몸으로 먹지 마세요 얼굴에 양보하세요 (0) | 2014.12.24 |
[매니큐어] (0) | 2014.12.20 |
Posted by 잇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