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키세. 너를 주운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처음 널 발견했을 때는 정말 작았는데. 지금은 다 커서 혼자 살아도 될 만큼 혼자서도 잘 하고 있지. 나보다도 돈을 더 많이 벌고 나보다도 일을 많이 하고. 늘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 매니저가 잘 해주겠지만 그 사람은 네가 하고 싶다면 무리하는 일이라도 시키는 사람이잖냐.
키세, 너는 우리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지? 딱 한 번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날 얼버무리지 말 걸 그랬구나. 그 후로 말해줄 기회가 없었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 말해줬을텐데.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어느 집에서 버렸는지 갈 때는 없던 박스가 골목 모퉁이에 나와있었다. 무심히 지나가려고 하는데 눈도 못 뜬 네가 그 안에서 우는 소리를 냈지. 어떻게든 살려는 몸부림이었을까, 저고리 하나만 달랑 입은 네가 용케도 지나가는 날 알아챈 것 같았다. 이제 갓 솜털이 나는 귀와 꼬리가 몸에 잔뜩 붙어서는 어서 데려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지. 여름이었지만 곧 저녁이었고 서둘러 너를 품에 안고 자취방으로 간 기억이 나. 주인 아주머니가 애완동물 금지를 걸지 않은 멘션이라 다행이었다.
내가 자취를 하지 않았다면 너는 별로 고생을 하지 않았겠지. 우리집은 강아지 금지면서 우리 엄마는 강아지를 잘 돌보셨거든. 집에서 먼 학교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고, 그날 처음 후회했다. 뭘 먹여야 하는 지 몰라 바들바들 떠는 너를 이불로 꽁꽁 감싸놓고 받지 않는 전화를 집에 수 차례 걸었어. 그날따라 가족들이 집에 늦게 들어와서 겨우겨우 연락이 되었을 때 나는, 부끄럽지만 거의 울고 있었다. 너의 낑낑 거리는 소리가 잦아들고 바들바들 떨리던 몸이 진정된 것이 오히려 불안해서. 엄마가 "너 우니?"라고 하는 소리에 정말 울음을 터트릴 뻔 했는데 널 보면서 간신히 삼켜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너는 내 강아지였나보다.
나이도 모르고 무슨 종인지도 모르는 작은 강아지를 엄마는 상태만 듣고도 괜찮아지게 하는 법을 아셨어. 하지만 역시 내가 서툴 것을 아셨는지 내가 너에게 밤새 미지근한 물을 먹이고 있던 자취방으로 찾아오셨지. 멀리서 밤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다고. 내가 깜빡 잠든 사이에 엄마가 널 데리고 말도 없이 병원에 가셨는데 다녀와서도 내가 자고 있어서 발로 차였지. 다행히 넌 건강했고, 내가 너무 꽁꽁 감싸놔서 오히려 열이 올랐다고 했어. 엄마는 그 후로 내게 전화를 거는 일이 잦아지셨다. 그 안부 인사에 꼭 너의 안부를 묻는 게 들어갔는데 그 때마다 너도 제 전화인걸 아는건지 옆에서 짖어댔지. 기억나니? 가끔 엄마가 자취방에 찾아오셨을 때 너는 엄마 주위를 돌면서 졸졸 쫓아다녔는데.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지금도 우리 엄마한테는 자주 전화를 한다고 들었다. 지금은 전화를 주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지금 네가 딱 전화를 걸어주면 좋으련만. 아니, 아니다. 미안하다 키세. 아직은 너에게 전화가 와도 받지 못하겠어 역시. 어릴 때 네게 모델 일을 시키는 게 아니었는데. 처음에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너를 그렇게 일터로 밀어넣는 것이 아니었는데... 1년이면 다 자란 강아지라는 말에 넘어간 내가 나빴다. 변명이지만 자주 아픈 너를 키우려면 내 알바로는 모자랐어. 집에서 엄마가 보내주시는 돈도 죄송했고. 내가 서투른 주인이라 네가 아픈 거였을텐데.
나도 밥을 먹어야 했고, 쑥쑥 크는 너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먹었어야 했다. 그만큼 먹지 못했어도 네가 다른 개들보다 더 예쁜 건 네 마음이 예뻐서 였을텐데. 먹고 싶은 것도 꾹 참다가 겨우 배고프다고 말하던 걸 엄하게 키워야 버릇이 든다고 생각해서 늘 혼냈지. 밖에서 떠받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뭐든 잘 챙겨먹을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밖에서는 내가 주는 거 외엔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모르고. 덕분에 나만 좋은 주인이 되었지. 잡지에서는 내가 먹이지 않는 유기농 음식에 고급 간식들이 네가 먹는 거라고 기재되어있었으니까.
오랜만에 엄마가 올라와서야 너는 제대로 먹을 수 있었고, 나는 그걸 모델이 몸 관리 안 하고 많이 먹는다고 혼내려다가 되려 엄마에게 혼났잖냐. 그때도 나는 네게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몇 달 후에 겨우 병원비를 모아 들른 병원에서 네가 또래 개들보다 밥을 너무 적게먹는단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너는 금세 크는데 나는 그런 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거였어. 밖으로, 일터로, 다른 사람에게로 보내서 그렇게 크고 있는 너를 외면해버린 거야. 미안하다 키세. 하지만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그렇게 혼을 내고 엄하게 해도 매번 웃는 네 덕에 나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혼낸 다음에는 늘 네가 잘 해주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 나는 네가 바들바들 떨며 무서워하던 첫날 밤을 기억한다. 넌 다시 버림받는 게 무서웠던 거지? 결국 너는 내가 버린 거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버리지 않았어. 내가 도망친거지만 곧 너를 데리러 갈 거야.
지금 너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 좋은 주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어. 아직은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네게 했던 잘못들이 아직도 배워가는 모든 것에서 자꾸 튀어나와. TV와 잡지, 스크린에서 보는 네 얼굴은 잘만 보는데 네가 직접 거는 전화는 도무지 받을 자신이 없어. 그렇지만, 이제 교육 기간도 다 끝나가.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네가 유명해져서 내가 먼저는 전화를 걸지 못하지만 아마 다음, 혹은 그 다음 다음 전화는 꼭 받을게. 이 편지가 도착할 쯤이면 내가 전화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만 줄일게.
키세, 사랑한다.
발신인이 카사마츠로 찍힌 편지는 그렇게 끝났다. 키세는 끝없이 흔들리는 자기 꼬리를 어이없이 보며 눈물을 훔쳤다. 주인님, 빨리 데리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