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잘 몰라서 한국의 사정을 넣어보았습니다
*황립이 동거한다는 설정입니다
*키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모델 활동중, 카사마츠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금요일 오후. 카사마츠의 다리를 베고 누운 키세가 얼굴에 오이를 하나씩 붙이며 선배, 하고 불렀다. 대답 없이 고개를 내린 카사마츠는 눈빛으로 키세에게 용무를 물었다.
"선배, 저는 진짜 초콜렛밖에 안 먹는 거 알죠?"
"아아, 알아 알아."
오이로 얼굴을 덮어가며 올려다봐서 그런지 키세의 눈초리가 사람을 흘겨보는 것 같았다. 카사마츠는 키세의 얼굴에서 오이를 한 장 떼어 먹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키세가 더럽다며 싫어하는 짓이었지만 어차피 씻고 아무것도 안 바른 얼굴에 올리는데 카사마츠는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자기는 입 안에 있는 사탕도 꺼내먹으면서 뭘.'
갑자기 키세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놀란 카사마츠는 자기 생각이 들켰을까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러고 있슴까! 또 편의점 초콜렛으로 때우는 건 용서하지 않을 검다!"
"아얏, 어디 하늘같은 선배를 때려!"
"그건 옛날 일이구욧! 선배 내일 학교 못가고 싶지 않으면 빨리 빨리 움직이란 말임다!"
"아, 알았어!"
*
"...그래서 지금 나한테 온 거다?"
코보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제 앞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인상을 잔뜩 찌푸려서 험악해 보이지만 집에서 뒹굴던 체육복 차림 위에 달랑 코트 하나 입은 모양새가 몹시 측은했다. 전화를 해서 나오라기에 무슨 급한 일인가 했더니... 더 먼저 부를만 했던 모리야마는 웬일인지 여자애가 불렀다고 바쁜 모양이었다.
"응."
답이 늦은 걸 보니 카사마츠 자신도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도움을 청했으니 도와줘야지. 카사마츠는 핸드폰을 꺼내 메모할 준비를 했고 코보리는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
14일 점심. 점심시간이지만 아직 점심도 먹지 못하고 카사마츠는 불 위에 올려놓은 냄비와 그 위에 얹은 보울을 노려보고 있었다. 키세가 평소에 쓰던 빨간 땡땡이 무늬 앞치마에 머리수건까지 하고. 초콜렛은 순조롭게 녹고 있었다. 의자와 가구로 막아둔 방에서 키세가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이게 마지막이니까 다 끝내면 꺼내줄 셈이었다. 방 안에서 키세가 거의 절규하듯 소리를 질렀다.
"내 팬들이 준 초코인데!"
알고 있어. 라고 카사마츠는 생각했지만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이것도 다 자업자득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자존심의 문제였다.
전날 코보리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는 훌륭했다. 키세는 어찌어찌 잘 달래서 저녁 스케줄에 보내고 코보리가 같이 골라준 초콜릿과 틀을 가지고 실험에 착수했다. 첫 중탕은 물이 튀어들어가 뭉쳐버려 실패. 카사마츠가 당황해서 전화하자 코보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절대 초코를 더 넣지 말고 버리라고 했다. 다음 중탕은 틀에 넣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너무 뜨거웠는지 틀이 찌그러지는 바람에 실패. 그리고 세 번째는 초코가 모자라 찌그러진 틀에 있던 초코를 다시 넣었다가 실패. 보통은 실패할 리가 없지만 식용유를 바른 틀에 넣었던 것이라서 그랬는지 어째서인지 맛이 이상해져서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사러 가려고 했으나 꼭 정리를 하면서 만들라던 코보리의 말 때문에 주방부터 치우느라 사러 가지 못했다.
가게들 문이 닫을 시간이 된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키세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양 손에 가득 쇼핑백을 든 것도 모자라 품에 가득 안고 들어온 초콜렛과 함께. 그리고 키세는 보란듯이 현관 옆에 상자들을 턱 턱 내려놓으며 카사마츠를 쳐다봤었다. 카사마츠는 제가 고생한 것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결과물이 결국 없기도 했고. 그래도 집에 감도는 초콜렛 냄새를 맡았는지 곧 살살 눈웃음을 치며 카사마츠를 방으로 끌었다. 그러나 학교에 못가고 싶지 않으면 어쩌고 지껄였던 것 치고 키세는 매우 빠르게, 그리고 카사마츠를 내버려두고 혼자 잠이 들었다.
어떤 게 카사마츠의 자존심을 그렇게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준비하지 못한 초콜렛일까, 키세가 한아름 안고 들어온 초콜렛 더미일까, 자신을 내버려두고 잠든 키세 일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카사마츠는 눈을 뜨자마자 키세가 받아온 초콜렛의 모든 포장지를 다 벗겨내버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했다.
'어차피 키세 입에 들어가는 건 똑같으니, 희생 좀 부탁합시다.'
카사마츠는 그런 경건한(?) 마음으로 초콜렛을 중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렇게 난리 칠 것을 아니까 문은 의자와 옷가지와 서랍장을 끌고와 막아놓았다. 장식이 달렸든 아니든 모든 초콜렛은 중탕이 되어 카사마츠가 고른 방법으로 소진되었다. 맛 조차 섞였지만 카사마츠는 일부러 가리지 않고 녹여냈다. 어차피 몇 번에 나눠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맛이 얼마 섞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야 카사마츠 본인은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생각하며 제 입에 넣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보울에서 다 녹은 마지막 초콜렛은 식빵과 초코로 이루어진 초코 샌드위치 처럼 보이는 것의 겉면에 발라졌다. 카사마츠는 제법 내고 싶었던 초코 케이크 모양 같다고 생각했다. 틀에 넣은 초코는 딸기에 바른 초코와 함께 냉장실에서 굳고 있었고 커피포트에서 마침 다 끓은 우유는 큰 머그잔에 담긴 코코아가루 위에 부어졌다. 초코 투성이의 식탁이었다. 카사마츠 특제.
"선배 이 나쁜 사람!"
"이제 나와도 돼."
"싫어요! 안 나갈거야!"
모든 준비를 끝낸 카사마츠는 앞치마도 벗어던지고 키세를 가둔 방 문 앞을 치웠다. 키세는 울다가 지쳤는지 카사마츠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도 침대에 가만히 엎어져서 꿍얼거릴 뿐이었다. 다가가 어깨를 잡고 흔드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코먹은 소리로 앙탈을 부렸다.
"미안."
카사마츠는 키세의 등을 쓰다듬으며 여기저기 쪽쪽 입을 맞췄다. 뒤통수에도, 뒷목에도, 고개를 돌려서 뺨에는 할 수 없으니 드러난 팔에도. 그러고 있자니 붓고 붉어진 눈가를 한 키세가 눈을 맞춰왔다. 입은 쭉 나와서는 눈빛은 야단맞은 강아지마냥 물기를 아직도 머금고 있었다. 반은 심술을 부릴 속셈이었는데 과했던가, 하고 카사마츠는 생각하다가 말았다.
"자, 나가자."
키세는 아직도 입이 다섯자는 나와있으면서도 군말 없이 카사마츠를 따라가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또 눈물이 글썽글썽해져서는 유키옷치,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다행히 속상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감동했다는 것에 가까웠지. 더 말을 못 잇는 키세대신 카사마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재료는 네 팬들이 준 거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질투가 나서 저지른 것도 있고 내가 만든 건 모조리 실패했으니 결과물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기도 했고... 내가 널 좋아하는 마음은 이렇게 분명하다고."
카사마츠는 귀가 벌개져서 말을 마쳤다. 키세는 이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자신의 옆으로 온 카사마츠의 허리를 덥썩 안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유키옷치... 오늘밤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너, 울고 있는 주제에 그런 말 하면 웃기거든? 우선 네거니까 이거 다 먹어야 한다?"
카사마츠는 웃으며 키세의 머리를 밀듯이 톡톡 쳤다. 키세는 기겁을 했지만 카사마츠의 심술궂은 얼굴을 보니 진심으로 다 먹일 모양이었다.
"에엑? 너무 많슴다! 유키옷치는 안 먹슴까?"
"이거 다 네거잖아? 무슨소리야."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키세가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유키옷치, 파란 리본으로 된 거 말임다... 못봤음까?"
"아, 그거?"
카사마츠가 포장지 더미를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리본이 비뚤게 매어진 작은 상자였다.
"그건 아무리 봐도 수제라서 남겨뒀어."
"아! 다행임다!"
그걸 받은 키세는 소녀처럼 기뻐하며 그것을 다시 카사마츠에게 내밀었다. 카사마츠는 고개를 갸웃 했지만 순순히 받았다. 제일 작았고 못생겨서 남겨둔 거였는데...
"이거... 제가 만든 검다."
"...네가?"
"다행임다, 선배가 이거까지 녹이지 않아서... 아까는 다 틀린 줄 알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름다."
베시시 웃는 키세를 보며 카사마츠는 저걸 남겨두기를 아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이따 밤에는 멋대로 잠이 들어도 용서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이걸 다 먹이고, 라고 카사마츠는 빼먹지 않고 다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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