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서관에는 사서가 있다>
동네에 휴무일을 빼고 매일 열 시에 문을 여는 도서관이 있다. 그 도서관의 사서 중에 머리가 노랗고 한 쪽 귀에만 피어싱을 하고 다니는 아주 잘 생긴 미남 사서가 있는데 아주 인기가 많다. 잘 생긴 얼굴도 한 몫 하지만 책 더미를 번쩍 번쩍 들어서 옮기는 힘과 그 힘을 만드는 몸의 근육 덕분이기도 하다. 아니 무엇보다 도서관을 독서실로 만들지 말라고 잔소리를 듣는 여고생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그 잔소리를 퍼붓는 목소리가 끝내준다.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인데 규모도 크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어 한가하던 도서관이 그 사람이 오고부터 가득 찼다. 내가 학생 때부터 꾸준히 다니던 도서관이니 그건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사람들이 퇴근하고 하교하는 저녁부터 그렇고 이렇게 문을 여는 열 시 부터 도서관에 나와있는 사람은 나 외엔 거의 없다.
"사서 선생님 이거 드세요!"
'도서관 안에는 음식물 반입 금지'와 '도서관 안에서는 정숙해주세요'라는 종이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던 미남 사서는 아직 자기가 도서관 안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닐 봉투 안에 담긴 미네랄 워터와 삼각김밥을 보더니 파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입에 달고 사는 '근무 중에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도로 다물었다.
"아직 근무 시간 아닌데요?"
내가 선수를 쳐버렸기 때문이다. 도서관 입구에 걸린 커다란 시계는 아직 아홉시 반도 안 되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씩 웃으며 재차 비닐봉지를 내밀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로 내려다보며 내 머리를 몹시 헝클어놓고 먼저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거나 같이 들어오라는 신호는 하지 않았다. 그건 규정에 어긋나니까.
"다 큰 어른이 그렇게 할 일이 없습니까?"
다만 문을 잠시 닫아두기 전에 한마디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그 말에 그저 씩 웃어보였다. 미남 사서가 늘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그렇게 웃냐고 떨떠름해하는 그 표정대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남 사서도 웬일인지 마주 웃어주었다. 그것도 입가와 눈꼬리를 녹을 듯이 접어 아주 눈부시게. 멍하니 그 미소의 잔상을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직 도서관 개관까지는 30분이 남았다. 한 달 동안 했던 대로 몸이 먼저 도서관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신은 미남 사서의 잔상 앞에 두고 온 것 같았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 남자가 들러붙는 건 징그럽다더니 웬일로 웃어주는 것일까. 뛰어서 두근거리는 건지 그 웃음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그저 도서관이 열기를 기다리며 더 열심히 뛰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아 예..."
도서관 입구에 카드를 찍고 들어가면 있는 카운터의 여자 사서분이 인사를 한다. 오늘도 상냥한 그 분의 인사를 얼굴도 바라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받았다. 여자는 어렵다. 그것도 내게 호감을 가진 여자라면 더더욱. 날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왠지 그런 관심은 버겁다. 내가 남자를 좋아해서 그런가? 하지만 보통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더 어려워한다던데 내가 특이한 케이스인가보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빠르게 실내화로 갈아신고 미남 사서를 찾아나섰다.
'보통은 이 시간에 여기 있어야 하는데...'
이층 A실이 그의 근무처였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없이 텅 빈 서가를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 책을 올리러 온 다른 사서 분이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거셨다. 이 분도 여자분이라 내 눈은 또 허공을 떠돌았다.
"카사마츠 씨 여기 계셨네요. 키세 씨 찾으시죠? 지금 옥상에 있는데 가보시겠어요?"
"네? 네, 감사합니다..."
이즈미 씨, 라는 말은 입 안에서 모기만하게 맴돌기만 했고 그 사이에 사서 분은 책을 꽂으러 저만치 가고 말았다. 옥상이랬지? 그 미남 사서가 있는 곳이. 빠르게 A실을 빠져나가 계단을 타고 오 층 위의 옥상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평소에 도서관 주변을 돌던 것이 이런 때에 도움이 되는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카사마츠 씨?"
열려있는 옥상 문으로 뒤돌아 있는 미남 사서를 발견하고 부르려던 차였다. 내 이름을 아는 거야 늘 책을 빌리고 이용자 확인을 받았으니 이상할 것도 아니었지만 뒤로 돌아있는 상태에서 내가 온 걸 아는 건 조금 이상했다. 내가 올 걸 알았나?
"...키세 씨?"
다가가며 조심스레 그를 부르자 평소의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옥상 안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옥상 문이 있는 쪽을 돌아 벽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햇빛이 따가웠던 걸까 하고 있으려니 아침에 보여준 그 미소를 또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홀려서 바라보고 있으니 예쁜 입술이 말을 걸었다.
"아침은 고마웠어요.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미네랄 워터 상표를 잘 골라오셨더라고요. 더 오래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분발하셨네요? 합격입니다. 삼각김밥은 조금 에러였지만요. 고기감자맛은 카사마츠 씨가 좋아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도 이제부터 좋아해보도록 하죠. 아침마다 귀여운 짓 하는 카사마츠 씨가 좋아하는 거라면."
삼각김밥이 에러였단 말에 내 얼굴은 삽시간에 열이 올랐다. 귀까지 열이 올랐는지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하지만 미남 사서는 계속 웃으며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 여고생들에게 잔소리하던 그런 목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독히도 부드러워서 귀 안에 달라붙는 것 같은 목소리로 믿기 어려운 말을 하고 있었다. 멍하니 그 입술을 보다가 살짝 눈을 들어 미남 사서의 눈을 보았다. 그러자마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아침의 녹을 듯이 접힌 눈꼬리는 없었다. 잡아먹을 듯이 불타는 눈빛이 나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얼굴로 잔뜩 몰린 열이 온 몸에 퍼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려고 했지만 벽도 없는데 그럴 수 없었다.
"어디 가려고요?"
미남 사서의 팔 안에 언제 들어갔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는 사이 그 팔은 나를 더 가까이 끌어안고 바로 앞에서 속삭였다. '기억 안 나요? 내가 좋아하는 미네랄 워터 골라오면 사귀어 준다고 했던 말.'
"아."
그제야 나의 첫 고백을 기억해내고 또 다시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갑작스럽게, 그보다 더 뜨거운 혀가 내 입술을 가르는 것도 느껴졌다. 미남 사서의 눈에서 타고 있던 불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눈을 꾹 감기 전에 잠깐 본 눈빛에는 무언가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끝**
백수 카사마츠가 매일 사서 키세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대시하다가 도리어 키세에게 잡아먹히는 걸 써보았습니다. 신성한 도서관에서 무슨 짓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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