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에 뭐가 있는데... 있는데... 하고 멍하니 있다가 보니까 10시 반이 넘었더라고요? 그제야 생각난 전력...
이제부터 합니다 ㅠㅠ
여름은 덥고 습하고 뜨겁고 벌레가 많다. 산에는 산모기가, 바다에는 바다 모기가...
"바다에 무슨 모기가 있어요?"
"있거든? 너 산모기보다 바다모기가 무섭다는 말 모르냐?"
"그런 말이 있었으면 제가 왜 몰라요?"
"그러면서 바다모기 무서운 것도 몰라?"
"아, 모름다 몰라! 바다 가요, 바다! 작년엔 잘만 갔으면서!"
길 한복판에서 덩치 큰 남자 둘이 바다를 가네 마네 싸우는 광경은 그리 흐뭇하지만은 않았다. 카사마츠보다 한참 더 큰 키세가 카사마츠의 팔을 붙들고 주저앉다시피 늘어지는 모습은 지나는 사람마다 한 번씩 쳐다보고 재빨리 외면해버릴 만큼 보기 좋지 않았다. 카사마츠도 키세 쪽으로 기울려는 몸을 안간힘을 써서 버티며 절대 바다는 안 간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당장에 키세를 걷어차버렸을 것 같은 험악한 표정이었다.
"작년엔 다같이 합숙 간 거였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왜 안 가는 검까!"
"나는 졸업했다니까! 1학년들도 불편할 거라고!"
"아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몰라요! 나랑 둘이서 가는 것도 안 간다고 하고!"
"바보자식, 애초에 내가 왜 너랑 같이 바다를 가냐니까?"
"바다 가서 물놀이도 하고 음식도 사먹고 하면 재밌잖아요!"
"올해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사람들이랑 가라니까? 투명소년도 있고!"
"쿠로콧치는 이번 방학에 미국 간다구요!"
"넌 친구가 걔 밖에 없냐? 기적의 세대들 끼리 좀 모여!"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처음 새 운동화를 산다고 만났을 때는 근황이나 스포츠 가십을 가벼게 얘기하며 평화롭게 쇼핑을 했었다. 건물 안에 에어컨이 있으니 좋다고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저녁은 더위엔 역시 스태미너라며 고기를 먹었다. 카페에 들어가 후식으로 시원한 음료를 시켜놓고 서로의 예정을 묻기 시작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카사마츠가 얘기한 방학 일정의 빈 곳에 키세가 자연스럽게 자신을 끼워넣은 게 문제였다.
'그러면 그때 저랑 바다가면 되겠네요.'
'뭐?'
방학 때도 비는 시간에 만나고 놀 수는 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숙박여행 계획이 튀어나오자 카사마츠는 당황했다. 키세는 카사마츠가 사양하자 그러면 농구부 합숙을 바다로 정하면 같이 가겠냐고 다시 물었다. 카사마츠는 계속 거절했지만 오히려 거절 할 줄 몰랐던 마냥 당황한 키세가 끈질기게 졸랐고, 마침내 카페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언성이 높아져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키세의 바다 가자는 소리에 카사마츠는 뛰어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키세는 줄곧 성장중이었고 그건 키나 다리길이뿐만이 아니라 순발력과 스피드도 마찬가지여서 카사마츠는 1분도 되지 않아 따라잡혔다. 그 후에는 앞서 보신 바와 같다.
"아 좀, 하나밖에 없는 후배 소원인데 들어주세요!"
"갑자기 무슨 소원이 됐어? 이것 놔, 나는 집에- 으악!"
"으악!"
키세는 다른 말이 더 없는지 소원 운운하며 카사마츠의 팔에 매달렸다. 카사마츠는 끈질긴 키세를 어떻게든 떼어놓으려고 헛점을 노려 몸부림을 쳤지만 힘에 밀려 오히려 키세 쪽으로 넘어지게 되었다. 졸지에 부둥켜 안고 바닥을 뒹굴게 된 두 남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보고 있었다면 몸싸움을 하느라 엎치락 뒤치락 하는 걸로 보여 신고 당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키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망가려는 카사마츠를 재빨리 제 팔다리로 꽉 잡았다. 카사마츠는 간신히 빼낸 한 쪽 팔로 키세의 얼굴을 밀면서 틈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키세도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인 탓에 실패했다. 마주안는 자세라 키세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꼴이 되자 카사마츠는 키세의 얼굴을 밀어내는 대신 땅을 짚어 얼굴을 들었다.
"좀 놓으라고!"
"싫슴다!"
"바다 안 간다니까!"
"꼭 가야돼요!"
"바다에 뭐 맡겨놨냐!"
"네!"
"그럼 바다한테 가서 찾아!"
"선배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슴다!"
"그럼 왜 가려고 하는건데! 너도 안 가면 되잖아!"
그때까지 바락바락 같이 악을 쓰던 키세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나 키세가 힘까지 푼 건 아니라서 빠져나가려고 다시 시도한 카사마츠는 실패하고 말았다.
"여름바다에서 야경을 보며 고백해야 이루어진다고 했단말임다..."
"뭐-"
"그러니까 선배랑 같이 가야돼요. 바다."
"......"
키세는 말을 마치고 팔다리를 풀어서 카사마츠를 놓아주었다. 키세와 카사마츠는 재빨리 일어나 몸을 툭툭 털었지만 방금 전의 이야기까지 털어버릴 순 없었다. 카사마츠는 키세를 보지 않았고 키세도 카사마츠 쪽을 보지 않았다. 각자의 맨 살에 붙은 흙먼지까지 깔끔하게 없애려는 듯이 몸을 터는 데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점점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했네요."
키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카사마츠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슬슬 들어가죠."
"그래. 잘 가라."
"선- ...안녕히가세요."
키세가 인사도 하기 전에 카사마츠는 자기만 인사를 마치고 재빠르게 멀리 뛰어가버렸다. 키세는 금방 작아진 뒷모습에 대고 중얼거리듯 인사했다. 키세는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어 가슴을 펴고 걷기 시작했다. 왔던 거리를 지나고 역으로 들어가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서서 가다가 난 자리에 앉아 생각난듯 휴대폰을 꺼냈다. 카사마츠에게 잘 들어가라고 문자라도 보내려던 참인데 이미 카사마츠에게 문자가 몇 개나 와 있었다. 미리보기를 볼 생각도 못하고 가장 최근에 온 문자부터 열었다.
-나 모기 물린 만큼 맞을 줄 알아.
-대신 모기 대책은 확실히 해라.
-합숙은 폐가 되니까.
-둘이서 바다 가자.
읽어갈 수록 키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장 처음 문자까지 본 키세는 앉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키세의 어깨가 웃는지 우는지, 소리 없이 떨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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